뇌성마비 언어·지체장애 딛고 美 조지메이슨大 최고 교수 오른 정유선
"자기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일, 그게 장애"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선생님의 은혜를 소중하게 이야기 한다. 뇌성마비로 인한 언어·지체 장애를 정면돌파한 정유선 교수가 들려준 ‘선생님 이야기’ 속으로 고고~!! 조선일보 why(김신영 기자의 별 사람)에서 발췌, 정리했고요. 맨 하단 링크에서 원문(풀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미국 조지메이슨대 특수교육과 정유선 교수는 뇌성마비로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한 학기에 세 과목을 가르치고‘최고 교수상’도 받았다. 얼마 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정 교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었던 신현숙 선생님의 편지(아래 작은 사진)가 삶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26 년 전 편지엔‘아무것도 겁내지 말고 너를 표현하여라’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위의 작은 사진은 정 교수가 이번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신현숙 선생님을 만나서 찍었다. /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26년 전(1986년 명성여고 1년), 당신(신현숙 국어 선생님)의 말 한마디, 편지 한통서 기적은 시작됐습니다.
◇'남에게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해라'
정유선 교수에게 말은 '평생 숙제'다. 꿈에서조차 한 번도 유창하게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유창하게 말하는 유선이 꿈'을 꿔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국어 교사로 정 교수의 삶을 바꾼 신현숙 선생님이다. 26년 전 그날의 사건은 평화롭고 나른한 여느 여고 교실의 국어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 정 교수는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오후,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던 나에게 닥친 일에 너무 놀랐다"고 했다. 신 선생님(지난 봄 퇴직)은 "유선이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한참을 계획했던 일이었다"고 했다.
1986년 봄 명성여고 1학년 국어 수업 시간. '결합법칙' 사건 이후로 거의 7년 넘게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발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던 '열외 학생' 정유선을 신 선생님이 불렀다. "유선이가 일어나서 시(詩)를 한번 읽어보자." 정 교수는 "그날은 선생님이 작정했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고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저는 더듬더듬 시를 읽었어요. 시를 다 읽고 앉자마자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저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울었어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게 돼서, 그런데 뜻대로 잘 안 되어서… 그래서 울었겠죠. 며칠이 지나자 제게 씌워져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뚜껑'을 치워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을 담아 짧은 편지를 보냈지요." (중략)
정 교수는 "책 읽기도 그렇지만, 2학기가 끝나고 선생님이 보내주신 답장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오는 편지였다"고 했다. 정 교수는 편지를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다음은 긴 편지의 내용 중 일부다.
<유선아, 새 학년을 기다리며 알찬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 나는 그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놓인 편지에 온통 신경을 빼앗겨 버렸다. 솔직히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서 열어보기가 망설여졌다. 내 뜻밖의 행동에 대하여 유선이는 어떻게 느꼈을까? 너무 큰 충격을 받았거나 혹시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내 교무 수첩을 들여다볼 때마다 유선이의 칸이 날짜가 없이 비워져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떤 때는 꿈도 꾸었다. '어, 유선이가 아직 한 번도 안 읽었네. 정유선 일어나요.' 유선이는 서슴지 않고 일어나서 유창하게 읽었지. 수업 시간에 수첩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유선이 이름을 부를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나는 그날까지 얼마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지 모른단다.
며칠을 두고 망설이다가 그날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수업을 들어가서 무심한 너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또 마음이 흔들려서 마지막 순간에 그냥 넘어갈 뻔하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에서 힘을 내어 너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네가 일어나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읽어가는 동안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고 눈물이 솟아 넘치려는 것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네가 혼자 힘으로 다 읽고 앉는 것을 보고 나는 칠판을 향하여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단다. '잘 읽었어요' 하는 소리도 못했지.
유선아. 나는 다만 너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자신과 기쁨을 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겁내지 말고 움츠러들지 말고 너를 표현하여라. 한 번에 안 되면 다시 하고 또다시 하고, 될 때까지 혼신을 다하여 끈기 있게 해보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게으름을 일으키고 게으름이 쌓이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특별히 누가 너를 생각한다거나 무관심하다거나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유선이에게는 오직 유선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이지, 누가 유선이에게 어떻게 한다고 하여 거기에 마음이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해라… 부디 더 큰 기쁨을 경험하고 더 큰 감동을 만나기를 기원하며. 이만 안녕! 1987. 2. 27. 아차산 기슭에서 辛>
(중략)
◇"자기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일, 그게 장애"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죠?
"삶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비법은 없어요. 그냥 견디고 돌파하는 수밖에. 저는 신체 조건에 적합할 것 같아서 대학 때 컴퓨터공학을 선택했지만 '소프트웨어(software)'를 '물렁물렁한 도구'라고 번역할 정도로 컴퓨터에 문외한이었어요.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죠. 프로그래밍 숙제를 하려고 씻지도 않고 24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붙어 있은 적도 많아요. 새벽 3시까지 공부하는 건 아주 일상적이었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학생회관 소파로 가서 밤새워 공부를 했죠. 그렇게 매달린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다섯 과목 모두 A를 받았어요. 너무 좋아 길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죠. 그때 누가 저를 봤으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중략)
인터뷰하는 내내 정 교수는 유쾌했고, 많이 웃었다. '유머 감각이 좋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을 인용했다.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고 하잖아요. 유머와 행복과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과 역경, 그리고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출처: 조선일보 [Why] [김신영 기자의 별★ 사람]
선생님, 고마운 나의 선생님
입력 : 2013.09.14 03:02
원문(풀스토리) : http://me2.do/xpgVn7b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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