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학교 교사, 작가) 1970년 생
서울 중동고등학교에는 특이하게도 다른 학교에는 없는 '철학'이라는 과목이 있고 안광복(1970년~ )은 그 곳의 철학교사(철학박사)이다. 저서로 <<철학, 역사를 만나다>> <<처음 읽는 서양철학가>> <<성장을 위한 책 읽기>>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 등이 있다. 안광복님이 쓴 아래 글은 <고교독서평설(지학사)> 2009년 3월호에 실렸다. 우연히 그의 좋은 글을 읽고 함께 공감하고자 이곳에 옮긴다. [편집자 주]
사진은 '서라벌고등학교 22회' 동창모임.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든 이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폐쇄형 SNS 밴드와 카페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있다/사진=서라벌 고등학교 22회 동창회 제공]
"진정한 친구는 왜 드물까?" - 인간관계의 기술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 세상과 하나도 없는 세상"
학회 첫 발표, 나는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내 앞에 앉아 있을 사람들은 이름난 학자들이다. 뛰어난 학자들에게는 조용한 카리스마가 있다. 부드럽지만, 사람을 한없이 작고 부끄럽게 만드는 무엇 말이다. 나는 무엇보다 빈틈없어야 했다. 허술한 논문을 어눌하게 발표한다면 그 분들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 것인가.
뒤척이는 밤들이 지내고 마침내 다가온 ‘그 날’, 나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꼭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기분이었다. 그날따라 길이 아주 심하게 막혔다. 자칫하면 발표도 못해보고 학자로서의 데뷔무대를 ‘결석’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시작 5분을 남기고 학회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냅다 뛰었다. 뛰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무리 정신없더라도 ‘학자답게’ 품위 있고 차분해야 한다. 원로 학자들에게는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 할 테고........갑자기 눈앞이 번쩍했다. 뒤통수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
"야 임마,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건장한 청년이 동그랗게 눈을 끄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낯이 익은 얼굴, 누구더라? 머뭇거리다 마침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 늘 실실 웃고 다니던 까까머리 K였다! 항상 내가 책만 보면 장난을 걸던 아이. 순간, 긴장이 확 풀렸다.
"이 자식이! 형님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뒤통수를 쳐?"
활짝 웃으며 서로 손을 맞잡았다. 순식간에 우리들의 어투와 몸짓은 고교 1학년의 그 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든든한 구원군을 만난 느낌, 마음이 편해졌다.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 세상과 하나도 없는 세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공부보다 까다로운 관계의 기술"
어른으로 사람을 사귀기란 참 어렵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까닭이다.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이를 만났을 때, 나의 기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서는 위험하다. 자칫하면 상대는 나를 ‘주책없는 인간’으로 여길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성(性)의 사람이라면 ‘치근덕댄다’고 오해할 지도 모른다.
껄끄러운 이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막장 상황’이 생기지 않으려면, 싫어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나의 불편한 마음을 상대가 알아들을 만하게 전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깍듯이 차려 대했더니, 상대는 되레 자신을 멀게 느낀다고 오해를 할지 모른다. 내가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감한 치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늘 머리 아프다. 상대가 오해하지는 않을지, 나를 우습게 여기지는 않을지 등등을 늘 계산하고 따져봐야 하니 말이다. 관계의 기술은 아주 까다롭다. 대인관계를 다룬 책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반면, 오랜 친구를 만날 때는 아주 마음이 편하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추레한 입성을 하고 있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건, 친구는 그냥 친구다. 잘 보이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고 인정한다. 오래된 우정은 갑옷을 벗어던진 듯한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우정은 나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감정은 애증(愛憎)이다. 사랑하기에 증오하는 상태 말이다. 그냥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안보면 그만이다. 그도 아니라면 ‘원래 저런 인간’이라며 신경 끊고 지내도 된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이지만 내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속상하다면? 지옥도 그런 지옥은 없다. 둘의 마음은 분노와 속상함으로 가득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서로에게 상처로 다가갈 테다.
‘철천지원수’ 사이는 원래 가장 친한 친구들이였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오는 사랑을 타고 온다. 상대를 믿고 의지했던 만큼 배신감도 훨씬 더 크다. 한번 꼬인 우정은 회복하기가 어렵다. 너무 많은 상황과 감정이 얽혀 있는 나머지, 문제가 뭔지 찾아내기조차 어려울 때도 많다. 인간관계는 우주의 그 어떤 것보다 복잡하다. 좋은 우정을 가꾸고 싶다면 관계의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뭘 그런 것 같고 화를 내? - 감정 은행 계좌"
스티븐 코비(Steven Covey)는 오해를 만들지 않는 간단한 방법을 일러준다. 늘 나에게 잘 해주는 이들에게는 화를 내기 어렵다. 반면, 나를 늘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역정을 낸다. 왜 그럴까?
코비에 따르면, 인간 감정은 은행통장과 똑같다. 통장에 돈이 많으면 어지간히 돈이 나가도 괜찮다. 잔고가 별로 없을 때는 조그만 지출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람들 사이도 그렇다. 평소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사람들은 나의 ‘감정은행 계좌’에 점수를 많이 쌓아둔 셈이다. 잘못을 하여 점수를 많이 ‘인출’했다 해도, 잔고가 충분하기에 내 마음은 별로 속상하지 않다. 늘 나에게 눈에 가시같이 구는 사람들은? 그 이는 이미 ‘마이너스 통장’상태다. 그런데도 더 점수를 잃으니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
따뜻한 인사의 말 한 마디, 혼자 점심 먹는 친구와 같이 식사해주기, 틈틈이 안부 전화 하기 등등, 일상의 소소한 배려 속에 감정은행 계좌의 점수는 쌓인다. 생각 없는 말 한 마디, 빌린 물건 제 때 안 돌려주기 등등, 사소한 잘못은 친구 관계를 조금씩 위기로 몰아넣는다.
인간관계는 나무를 키우는 일과 같다. 꾸준히 물을 주고 다듬듯, 상대의 ‘계좌’에 좋은 점수가 쌓이도록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뭘 그런 것 같고 화내고 그래?”라는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라면, 혹시 나에게 잘못은 없는지 점검해 보라. 아마도 우정만 믿고 계속 상대를 홀대했을 때가 대부분일 테다.
"‘나-너’로 만날 때, ‘나-그것’으로 만날 때"
관계의 ‘질’ 관리도 중요하다. 아무리 친구라도 항상 끈끈할 수만은 없다. 친구 사이가 오래가고 싶다면 적절히 거리를 두어야 한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1818~1965)는 만나는 성격에 따라 관계를 ‘나-그것’과 ‘나-너’의 관계를 나눈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의사는 환자를 ‘사람’이 아닌 ‘병’으로 대해야 한다. 감기를 앓는지, 폐병을 앓는지를 따져야지, 그가 아름다운지, 성격은 좋은지를 가늠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때 의사는 환자와 ‘나-그것’으로 만난다.
한편, 의사는 환자와 ‘나-너’로 만날 때도 있다. 치료가 끝난 후, 아픈 이의 편안한 얼굴을 보며 의사는 기쁨과 뿌듯함을 느낄 테다. 병을 앓으면서 속상했던 일은 없었는지, 생활에 불편한 데는 없는지 등등,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와는 ‘나-너’로 만나지만, ‘나-그것’으로 대해야 할 때도 있다. 공적인 일을 맡았을 때가 대표적이다. 이 때 나는 모든 사람을 ‘나-그것’의 관계로 대해야 한다. 이때는 친구도 내가 보살펴야 할 숱한 사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묻기 전에, 지금 이 상황이 ‘나-너’의 관계인지, ‘나-그것’의 관계여야 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훌륭한 우정은 이 두 가지 관계의 균형을 잘 잡을 때 이루어진다.
"탁월함은 습관이다 - 우정의 오묘함"
코비와 부버의 이론을 잘 알아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부탄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호의(好意)를 받으면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답례를 한다. 바로 고마움을 표시하면 우정이 쌓이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정을 나누는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과는 다르다. 값을 치루 듯, 상대방과 따뜻함을 1:1로 즉각적으로 주고받는 사이는 우정이 아니다.
일본 속담에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단다. 친구 사이에는 늘 적당한 섭섭함과 아쉬움이 깔려 있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용서 못할 일도 눈 감아 주는 것이 우정 아니던가. “고마 해라. 우리 친구 아이가?”라는 경상도식 표현에는 우정의 묘한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면 친구에게 고마움을 언제쯤 갚는 게 좋을까?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친구의 성격마다, 나의 기질에 따라 답은 여러 갈레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나-너’, ‘나-그것’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언제 ‘나-너’로 대해야 할지, ‘나-그것’으로 상대해야 할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친구 때문에 발목 잡히는 정치인이나 관료가 한 둘이 아닌 이유도 여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은 습관’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재능은 여러 상황을 숱하게 겪으며 반복 연습 하는 가운데 몸에 붙는다. 우정도 그렇다. 인간관계는 애매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 때 그 때마다 어떻게 행동해야 옳을지를 단번에 익힐 수는 없다.
깊은 우정은 순식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밥 먹듯 애증을 겪으며 서로의 관계를 ‘연습’한 후에야 ‘친구사이’가 이루어진다. 그러니 진정한 친구가 수 십 명에 이를 수는 없겠다. 마음을 완전히 나누는 친구 하나를 만드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탓이다.
진정한 친구의 숫자는 내가 얼마나 사람들과 관계를 잘 꾸려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관계기술 자격증’이라 할 만하다. 나에게는 친정한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탁월함은 습관이다. 사람들 하나하나를 배려하고 마음 쓰는 ‘습관’을 기르다보면, 어느덧 내 주변은 좋은 친구들로 가득 차게 될 테다.
<글. 안광복(중동고등학교 교사, 작가) 1970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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